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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생텍쥐페리)를 읽고

이상엽

2023-01-05

380

내가 알던 생택쥐페리의 책은 어렸을 적 읽었던 어린왕자 뿐 이였다.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항공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게 되었고 책의 첫 페이지는 가볍게 열었지만 책장의 마지막 문을 닫을 때에는 그 이상의 것들과 묵직한 울림을 느꼈다.

특히나 생택쥐페리는 작가의 삶과 조종사의 삶이 공존한다. 이 작품은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자서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실제로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임무수행 중 실종되었던 것과 같이 소설의 마지막도 파비앵 조종사가 실종되어 마지막을 맞이했으니 데자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작가 개인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녹아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항공기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 우편은 도로나 철도가 주요 수단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공업계는 야간비행을 택했다. 낮에는 기차나 증기선보다 앞서지만 밤에는 뒤처지기 때문에. 현재는 기술의 발달로 항공운송의 야간비행은 문제없겠지만 1900년대 초에는 아주 위험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위험한 모험을 뛰어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택쥐페리는 생생한 묘사력으로 나를 파타고니아 한 가운데에 비행하는 착각을 주었다. 고요한 바다, 잔잔한 구름, 들판의 풀을 뜯는 양떼들을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항공에 대한 로망을 실현시켜주었다. 그러면서 나를 극중으로 더 끌어당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극중에 자신만의 신념을 확고하게 보여주는 리비에르와 파비앵이 등장한다. 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 조종사 파비앵은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신혼이었던 그는 비행 때문에 부인을 떠나는 슬픔보다 비행을 나선다는 설렘이 더 컸던 인물이다. 비행에서 마주치는 평야, 마을, 산들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 자유롭게 떠나는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안정적인 비행 속 의무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았던 것일까.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야간비행에 나선다. 항공기가 폭풍우지대로 접어들었을 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넓게 퍼진 번개 전선의 구름에 갇혀 항공기가 크게 흔들렸을 때 파비앵은 아득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무선이 먹통이 되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나침판을 보려 애쓰는 그를 통해 막막함을 느꼈다. 폭풍의 갈라진 틈새로 그에게 비치는 희미한 불빛...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다른 도리가 없던 파비앵은 그 불빛을 따라가려 한다. 마치 불빛에 돌진하는 한 마리의 나방처럼.
그렇게 올라간 항공기는 3000m 두께의 번개 구름을 뚫고 고요한, 미지의 하늘로 향했다. 구름위에 올라 하얗게 반사되는 빛의 향현 속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젠 안전하다는 생각? 집에 무사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연료도 떨어지고 무전도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는 사실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뒤로 한 채 폭풍우 속으로 쓸쓸히 쓸려 내려가 버렸다.
그가 이렇게 위험한 야간비행을 나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그가 자신의 일을 사랑했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에게서 무시무시한 직업적 소명을 보았다. 그 시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위험했던 야간비행의 위업을 개척하고자 했던 신념이 아니었을까?

다음으로, 파비앵의 상관 리비에르는 지나치게 엄격하며, 목적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비록 자신이 내리는 명령이 부당할지라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냉정하게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가 비인간적이고 과도해 보일지라도 그것조차도 인간의 결함을 단련하고자 한 태도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항공사가 그를 리더로서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리비에르는 칼 같은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으로 무수한 야간비행을 안전하게 지휘해왔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극중 교량 건설 현장 부근에서 엔지니어 하나가 리비에르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이 다리가 한 사람의 으깨진 얼굴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겁니까?” 그 대답에 리비에르는 “인간의 삶이 그 값을 따질 수가 없을 만큼 값어치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값진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던가, 그게 뭐란 말인가?”라고 답했다. 그에게 있어 한사람의 행복이 깨지더라도 해야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그것은 약속이 아니었을까? 우편을 항공기로 빠르게 전달하겠다는 약속, 야간비행을 무사히 운영하겠다는 부하들과의 약속, 이 모든 것을 굳건히 지켜내겠다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러한 신념 속에 야간비행을 운영하는 도중 자신의 부하인 젊은 조종사 파비앵은 폭풍우에 그만 실종되고 만다. 책임자로서 그는 파비앵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밖에 없었다. 폭풍우 속에 길을 잃은 파비앵을 떠올리며, 응답하지 않은 무전을 기다리며 그는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그가 초조했던 이유는 자신의 부하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에 대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그 ‘약속’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냉정한 리비에르 일지라도 파비앵의 생사를 묻는 그의 젊은 아내의 슬픔어린 질문에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 분명 리비에르의 신념도 흔들렸을 것이다. 야간 비행에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런 그에게 부하직원이 위로하러 다가갔을 때 그는 다음 야간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신념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그는 약해질 수 없었다. 그가 무너지는 것은 곧 야간비행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기에.

리비에르 같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파비앵의 경우 비록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용감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했던 사람으로 앞으로 내가 직업을 가졌을 경우 그를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리비에르는? 목적을 위해 사람을 수단으로 써버리는 그런 상사를 만날 경우에는 분명하게 나는 불행해 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이끄는 리더의 상황일 때 리비에르의 냉철하지만 강인한 마음은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깊은 고민의 빠졌다. 일을 성취시키기 위해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극중에서 리비에르가 파비앵이 실종된 상태에서도 다음 우편비행 일정을 살펴보고 준비하고 있다는 장면에서 굉장히 놀랐다. 어떻게 부자 조종사가 실종된 와중에도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조종사의 실종에 관한 일도 아닌 일반적인 업무를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떡했을 까? 부하 조종사의 실종에 슬픔에 빠져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을 지도 모르겠다.
파비앵의 모습 속에서 인생에 대한 고뇌를 리비에르에게선 인간에 대한 고찰을 느꼈다. 인간들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며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사는 것일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만족하는 삶이 될 것인가? 인생에 대해 깊은 질문을 해보게 된다. 또한 인간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책은 나에게 사람과 삶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