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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 결국엔 사랑

민향기

2023-01-05

203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의 일생을 담은 책이다. 인자한 부모님, 현인들로부터 지식 습득, 마음 수양.... 높은 계급에 속한 싯다르타는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하여 사문들과 고된 수행을 하고, 아름다운 여인인 카말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세속적인 삶을 살아보기도 하며 뱃사공이 되기도 한다.
그의 일생은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스스로, 하나씩 얻어나가는 과정이다. 그는 고빈다, 카말라, 뱃사공, 상인, 사문, 아들.... 모든 사람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는다.

읽으면서 중간 중간 1학년 1학기 때 들었던 '동양 철학의 이해' 수업이 떠올랐다. 전반적으로는 계속 원효대사가 떠올랐다. 스스로를 비워내는 수양이 언급되는 부분에서는 묵가 사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연관되어 있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익숙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큰 거부감 없이 읽었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삶과 우리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결국 원하는 건 똑같았다. 평정심을 얻고자 하고, 자아를 찾고 싶어 하며, 좀 컸다고 부모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도 하고, 쾌락에 빠지기도 하며 사랑을 하고 사랑을 원한다. 다들 살아가면서 겪는 일, 감정이 책 속에 담겼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크게 두 부분이다. 싯다르타가 카말라를 만나서 떠날 때까지의 부분, 그리고 존재도 몰랐던 아들을 만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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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당신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지요?"
"나는 사색할 줄을 아오. 나는 기다릴 줄을 아오. 나는 단식할 줄을 아오." (87.p)

마을에 도착한 싯다르타는 카말라를 봤고, 쾌락을 알게 되었다. 상인과 일하며 돈을 만져보기도 하고... 싯다르타는 이제 부드러운 옷과 비싼 신발을 걸친다. 물론 그는 사문 생활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갔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로.

그가 초반에 자신있게 카말라에게 할 줄 안다고 말했던 것. 상인에게 장점을 설명하기도 했던 것. 청년 시절 내내 그가 익혀온 것이 이제 그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가장 비천하고 덧없는 관능적 쾌락을 얻기 위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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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테지. 내가 가진 것들을 잊은 채 다른 이들의 물질적인 것들을 부러워하며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이 살아갈 때 중요한 것 중 하나이지만,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를 위해 타인에게 나쁘게 대하고 나를 잊고 살아간다면 무슨 소용일까. 내가 잊은 나는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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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 "나의 인생도 한 줄기 강물이었습니다.
소년 싯다르타는 장년 싯다르타와 노년 싯다르타로부터 단지 그림자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을 뿐, 진짜 현실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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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말라를 떠나, 마을을 떠나 길을 가던 싯다르타는 이전에 마을 가기 전 지나간 강에 다다랐다. 그때 만났던 뱃사공을 만난다. 그와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버린 채 뱃사공이 된다. 강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중 하나가 이 문장들에서 언급된 것.

지금껏 나는 내 주위를 통해 나를 정의해왔다. 가족 안에서, 친구 사이에서, 학교에서 맡은 역할들로. 타인이 생각하는 나에 맞춰왔다. 활기차고, 자신감 있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나를 만들어왔다. 성적이 좋은 나, 시험을 망친 나, 알차게 하루를 산 나, 하루종일 누워서 뒹굴거린 나, 자신감 있는 나, 걱정 가득한 나..... 전부 그냥 나였다.

요즘 너답지 않아_그냥 나는 나일 뿐인데.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에 '나'가 아니라 '나'가 그 다양한 행동들을 하는 거다. 나의 실수, 부족함,,,,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것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것들은 내가 살아 있다는 의미.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 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나도 전부 그냥 ‘나’인 것이다. 나는 지금 나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본질과 현재를 지닌 것이다. 이것을 읽은 더 이상 나는 그 무엇도 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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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일, 그러한 삶으로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 스스로 자신에게 죄업을 짊어지게 하는 일, 스스로 쓰디쓴 술을
​ 마시는 일,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자 하는 일, 그런 일을 못하게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74.p)

​ "설령 당신이 아들 대신 열 번을 죽어 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운명을 눈곱만큼이라도 덜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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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여기였다. 싯다르타가 아들을 만났던 부분이다. 그는 아들의 존재를 몰랐다. 카말라가 임신했지만 떠난 그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이후 좀 크고 나서 - 고타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길을 가던 카말라와 그의 아들을 만난다. 그는 아들을 사랑했다. 이만큼 마음을 빼앗겨 본적이 없다. 175페이지에 적혀있다. '이토록 맹목적으로,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며, 이토록 아무 결실도 없이, 그렇지만 이토록 행복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도 안속을 것 같은 보이스피싱도 자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수법에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 나로서는 이렇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 연인을 사랑할 때도 그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있고 친구를 사랑할 때도 친구에게 바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나를 위해 바라는 것들. 부모가 바라는 건 자식의 고통과 환멸이 면제되길 바란다. 가장 좋은 것들만 줄 수 있길 바란다. (근데 요즘 많은 기사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아무튼..생략)
아들을 향한 싯다르타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슬픔의 원천이 되고, 번뇌이지만, 고통을 주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하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자신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바라지 않는다.

​싯다르타의 아버지도 싯다르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사문들과 함께 고행길에 오른다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들이 고생하는 것이 싫고 자신을 떠나는 게 싫었을 거다.​ 그렇지만 싯다르타는 길을 걸었다.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부모가 된 후에 느꼈다. 집을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적어도 내겐 적용된다. 부모님만큼 나를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그걸 알기에 내가 다른 것에 쉽게 넘어가지도 않는 것이고 다른 인간관계에 목매지 않는 것이며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타지 생활을 하다보니 느꼈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큼 안정감을 주고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결국엔 사랑이다.
돌고 돌아서 사랑에 도착했다.

​나 자체를 마주하고 나 자체를 사랑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세상을 사랑하고.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207.p)

"그 사물들이 가상이든 아니든 그것은 별 문제가 안돼. 만약 그 사물들이 가상이라면, 그렇다면 나 역시 사실 가상적 존재인 셈이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 사물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와 똑같은 종류인 셈이지.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의 존재라는 사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사물들을 그토록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이고 그토록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거야.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라는 사실 때문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어." (211.p)

"사랑이라는 것 말일세, 고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212.p)

문어체가 조금 어색하고 내용이 다소 무거울 수 있지만 조금씩 곱씹으며 읽다 보면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싯다르타를 따라 자신을 찾아가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