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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불안>

이명현

202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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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이 저물어가던 무렵, ‘취업’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현실적인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그동안은 대학 생활 적응과 전공 탐색이라는 핑계로 유예해왔던 고민이었다. 하지만 동기들과 선배들이 하나둘 인턴을 준비하고, 자격증 문제집을 끼고 다니며, 연구실 인턴으로 경험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나도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은 거대해졌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은 곧장 불안으로 번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똬리를 틀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도전 그 자체보다 "도전하는 나의 모습"이 두려웠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내 밑천이 드러나면 어떡하지?” “남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해 보이면?”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면서도 막상 책을 펴면 불안이 앞섰고, 그 불안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실패할 바에는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게 낫다는 비겁한 안도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우연히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집어 들었다. 처음엔 단순히 ‘지금 내 기분과 비슷하네’ 라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듯했다. 특히 이 책이 불안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의지 박약 탓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 속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으로 정의하는 부분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줄곧 불안해 하는 나 자신을 자책해왔는데, 책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이자 깨달음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상당수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취업 준비가 막막해서 불안한 줄 알았던 나는, 사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자, 비로소 내가 왜 그토록 흔들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완벽하게 준비된 뒤에 시작하겠다는 강박을 내려놓기로 했다.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시도했다.

먼저, 어렵다는 핑계로 피했던 전공 책을 다시 펼쳤다. 이해가 안 돼서 덮어두었던 회로도와 복잡한 수식들을 노트에 꾹꾹 눌러가며 정리했고, 한 문제에 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솔루션을 보지 않고 끝까지 풀어보려 애썼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 도서관의 늦은 밤공기를 마시며 예전과는 다른 밀도로 공부에 매달렸다.

물론 시험 기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쿵쾅거리는 불안도 함께 찾아왔다. “이 방대한 양을 다 외울 수 있을까?” “저 친구는 벌써 다 끝낸 표정인데, 나는 왜 아직도 이 페이지일까?”

조급함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불안>에서 배운 대로 행동했다. 불안을 억지로 없애려 애쓰는 대신, 불안한 상태 그대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법을 연습했다. 손이 떨려도 펜을 놓지 않았고, 머리가 복잡해도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친 지금, 놀랍게도 나에게 남은 건 ‘여전히 불안하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해냈다’는 작은 자신감이다.

취업 준비는 여전히 무겁고 벅찬 과제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려움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불안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신호' 로 받아들인다. 불안은 나의 부족함을 증명하는 낙인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늦은 밤, 불 꺼진 방에서 타인의 화려한 SNS를 넘겨보며 나만 초라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혹은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룬 적이 있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불안>은 단순히 "다 잘 될 거야" 라는 뻔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 아니다. 대신 우리가 왜 타인의 시선에 병들 수밖에 없는지, 그 두려움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냉철하게 직시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남들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걸어갈 단단한 용기를 선물한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고, 그래서 불안하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 불안이 당신을 무너뜨리는 파도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할 파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그랬듯, 이 책이 당신에게도 불안을 안고도 기어이 한 걸음을 내딛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