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변화의 급류와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클라우스 슈밥은 1971년 세계경제포럼을 창립하여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세계의 각종 문제점을 풀어낼 수 있도록 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경제학자로서만이 아닌 공학자로서도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기술 발전과 이에 따른 사회 변화의 급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클라우스 슈밥의 저서,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책은 클라우스 슈밥의 시점에서 과학기술 혁명에 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세부적인 예시들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그의 경제적이며 동시에 공학적인 시각은 경제, 기업, 국가, 사회, 개인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세분한다. 이러한 분류는 기술 발전과 국제 사회에 대해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주제에 대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이해가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주제에 대해 세분화된 구체적 지식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이 글에 대해 고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필자 또한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저 신기술을 소개하는 책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기술과 사회에 대해 약소하게나마 지식을 쌓은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글의 새로운 구심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우리 사회 속의‘연결성’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세 가지의 근거를 제시한다. 바로 ‘속도’, ‘범위와 깊이’, ‘시스템 충격’이다. 이 세 가지 근거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 연결성에 대한 변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 간의 긴밀한 연결과 그 관계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결성’에 집중하여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일상 속의 것들에 대해 새로운 고찰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불과 몇 년 전, AI 자율주행 시스템이 등장하며 이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었다. 미국은 화물차 운전수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미국 사회 내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율주행 시스템은 이런 가장들의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에 분명했다. 그에 따라 미국에서 화제가 된 논제는‘가장들의 일자리인 물류 차량들을 완전 자율주행으로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가?’였다. 저명한 학자들과 기업의 지도자들, 국가의 정치인들까지 나서 이에 대한 찬반 논리를 펼쳤다. 자율주행화에 대해 찬성한 이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 현상’이라고 주장하였고, 자율주행화에 대해 반대한 이들은 ‘경제 붕괴’를 주장했다. 기업이 만든 신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생계와 국가의 존망을 논하게 되는 연결성을 보인 것이다. 이는 기술로 인해 국가, 기업, 산업,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클라우스 슈밥이 주장한 ‘시스템 충격’현상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그렇다면 제4차 산업혁명을 현격하게 묘사하던 현재 완전 자율주행의 논의는 어디까지 진보했는가?’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을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과는 다르게 비교적 느린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완전 자율주행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관심도가 적어졌고, 이는 곧 주목받는 산업에서 한 발 물러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주장은 틀린 것인가?
이 또한 아니다. 클라우스 슈밥은 ‘시스템 충격’ 외에도 상술하였듯 ‘범위와 깊이’에 대한 주장을 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기술 영향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살펴보면, 이는 완전 자율주행이 아닌 보조형 자율주행으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조형 자율주행으로써 범위의 확장은 비단 자동차의 자율 주행뿐만 아니라 UAM과 드론 등 항공 기술은 물론, 선박 등의 해양 산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의 발전은 완전 자율주행 도입으로 인한 경제적 붕괴까지 고려하던 이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주변의 제4차 산업혁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방향으로 매우 빠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떠한 자세를 고수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주변과 관계없이 기존 지식을 유지하되, 이 지식들에 고착화되지 않도록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온고지신’의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당위적인 것을 놓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우리 스스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1821년 엡솜(Epsom)에서 개최된 경마 경기를 그린 ‘경마’라는 작품이 있다. 이 그림에서 말들은 모두 네 발을 땅에서 뗀 채로 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소수의 ‘네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주장들은 철저히 배척당해왔다. 하지만 사진기의 발명 이후 말은 달릴 때 네 발이 모두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이렇듯 기존의 고착화된 지식이 결코 진리는 아니란 것은 알지만, 무의식중에 이를 진리로 여기고 이에 대해 의심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흔히 있어왔던 일이다.
또한, ‘알고리즘의 모순’도 예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특정한 생각을 가지고 인터넷에 이를 검색할 때, 알고리즘은 이와 비슷한 검색어들을 자주 사용자에게 노출시킨다. 이 원리로 인해 사용자는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내용의 결과만을 계속해서 접하게 되고, 본인의 생각이 정답이며, 절대 다수의 의견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알고리즘의 모순이다. 현재와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는 다수의 정보가 하나를 가리킨다고 해서 이를 진리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새로운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기존지식을 지키고, 고착화된 지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식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은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 다시 기억 대상에 관한 자극을 받으면 그 기억이 더욱 오래 유지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곧 기존 지식을 유지하는 ‘온고’를 실천하는 통념적인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지신’의 방법으로 베카리아의 형벌론의 원리를 접목하고자 한다.
베카리아의 형벌론은 순간적인 큰 자극을 통한 기억은 빠르게 사라지고, 오히려 자극에 대해 내성을 키운다고 말한다. 반면, 지속적인 자극들은 오래 유지되어 자극을 통한 기억의 효과를 높여준다고 주장한다. 큰 틀에서 형벌론은 망각곡선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지만, 부가적으로 큰 자극에 대한 내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형벌론의 원리를 통해, 필자는 기술 발전과 그에 대한 영향을 일상 속에서 꾸준하고 빈번하게 접하는 것이 ‘지신’을 행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자의 경험과도 큰 연관성이 있다. 필자는 초등학생이던 당시 2015년 휴보가 다르파(DARPA) 재난대응 로봇대회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읽고 처음으로 기술 발전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그때의 필자는 다르파 대회라는 자극 때문에 그 당시 한창 로봇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후에 다른 기술 발전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았고, 이는 빈번하고 작은 자극이 아닌 순간의 큰 자극으로 끝났기 때문에 금세 흥미를 잃게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제4차 산업혁명’을 다시 읽게 되었고, 이는 기술 발전에 대해 지속적인 자극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기술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고, 2015년 이후로 찾아보지 않았던 다보스포럼(Davos Forum)에 대해 다시 알아보는 등의 습관이 생겼다. 이 습관을 통해 필자는 현재까지 기술 발전에 대한 포럼과 연구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필자의 경험에 따라 ‘지신’을 위해서는 베카리아의 형벌론의 원리와 같이 관심 분야와 관련된 기술 발전을 경험할 작은 계기를 만들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에 대한 자극을 찾아보는 것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집필된‘제4차 산업혁명’ 속 클라우스 슈밥은 2016 다보스포럼에서 논의된 산업혁명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클라우스 슈밥은 이미 산업혁명으로 인한 국가 간의 불평등 심화를 예상했다. 2019 다보스포럼에서도 클라우스 슈밥은 여전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국가 간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2023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다보스 포럼을 통해 보는 제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부작용,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은 상술한 트럭의 완전 자율주행화와 같이 기술의 발전에 국한되지 않은, 개인, 기업, 국가 모두의 ‘연결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되, 인류애를 잃지 않고 타인과의 범국가적이고 범계층적인 긴밀한 연결성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클라우스 슈밥의 시점에서 과학기술 혁명에 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세부적인 예시들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그의 경제적이며 동시에 공학적인 시각은 경제, 기업, 국가, 사회, 개인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세분한다. 이러한 분류는 기술 발전과 국제 사회에 대해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주제에 대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이해가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주제에 대해 세분화된 구체적 지식이 제공된다 하더라도,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이 글에 대해 고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필자 또한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저 신기술을 소개하는 책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기술과 사회에 대해 약소하게나마 지식을 쌓은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글의 새로운 구심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우리 사회 속의‘연결성’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세 가지의 근거를 제시한다. 바로 ‘속도’, ‘범위와 깊이’, ‘시스템 충격’이다. 이 세 가지 근거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 연결성에 대한 변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 간의 긴밀한 연결과 그 관계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결성’에 집중하여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일상 속의 것들에 대해 새로운 고찰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불과 몇 년 전, AI 자율주행 시스템이 등장하며 이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었다. 미국은 화물차 운전수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미국 사회 내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율주행 시스템은 이런 가장들의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에 분명했다. 그에 따라 미국에서 화제가 된 논제는‘가장들의 일자리인 물류 차량들을 완전 자율주행으로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가?’였다. 저명한 학자들과 기업의 지도자들, 국가의 정치인들까지 나서 이에 대한 찬반 논리를 펼쳤다. 자율주행화에 대해 찬성한 이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 현상’이라고 주장하였고, 자율주행화에 대해 반대한 이들은 ‘경제 붕괴’를 주장했다. 기업이 만든 신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생계와 국가의 존망을 논하게 되는 연결성을 보인 것이다. 이는 기술로 인해 국가, 기업, 산업,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클라우스 슈밥이 주장한 ‘시스템 충격’현상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그렇다면 제4차 산업혁명을 현격하게 묘사하던 현재 완전 자율주행의 논의는 어디까지 진보했는가?’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을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과는 다르게 비교적 느린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완전 자율주행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관심도가 적어졌고, 이는 곧 주목받는 산업에서 한 발 물러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주장은 틀린 것인가?
이 또한 아니다. 클라우스 슈밥은 ‘시스템 충격’ 외에도 상술하였듯 ‘범위와 깊이’에 대한 주장을 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기술 영향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살펴보면, 이는 완전 자율주행이 아닌 보조형 자율주행으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조형 자율주행으로써 범위의 확장은 비단 자동차의 자율 주행뿐만 아니라 UAM과 드론 등 항공 기술은 물론, 선박 등의 해양 산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의 발전은 완전 자율주행 도입으로 인한 경제적 붕괴까지 고려하던 이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주변의 제4차 산업혁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방향으로 매우 빠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떠한 자세를 고수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주변과 관계없이 기존 지식을 유지하되, 이 지식들에 고착화되지 않도록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온고지신’의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당위적인 것을 놓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우리 스스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1821년 엡솜(Epsom)에서 개최된 경마 경기를 그린 ‘경마’라는 작품이 있다. 이 그림에서 말들은 모두 네 발을 땅에서 뗀 채로 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소수의 ‘네 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주장들은 철저히 배척당해왔다. 하지만 사진기의 발명 이후 말은 달릴 때 네 발이 모두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이렇듯 기존의 고착화된 지식이 결코 진리는 아니란 것은 알지만, 무의식중에 이를 진리로 여기고 이에 대해 의심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흔히 있어왔던 일이다.
또한, ‘알고리즘의 모순’도 예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특정한 생각을 가지고 인터넷에 이를 검색할 때, 알고리즘은 이와 비슷한 검색어들을 자주 사용자에게 노출시킨다. 이 원리로 인해 사용자는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내용의 결과만을 계속해서 접하게 되고, 본인의 생각이 정답이며, 절대 다수의 의견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알고리즘의 모순이다. 현재와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는 다수의 정보가 하나를 가리킨다고 해서 이를 진리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새로운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기존지식을 지키고, 고착화된 지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식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은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 다시 기억 대상에 관한 자극을 받으면 그 기억이 더욱 오래 유지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곧 기존 지식을 유지하는 ‘온고’를 실천하는 통념적인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지신’의 방법으로 베카리아의 형벌론의 원리를 접목하고자 한다.
베카리아의 형벌론은 순간적인 큰 자극을 통한 기억은 빠르게 사라지고, 오히려 자극에 대해 내성을 키운다고 말한다. 반면, 지속적인 자극들은 오래 유지되어 자극을 통한 기억의 효과를 높여준다고 주장한다. 큰 틀에서 형벌론은 망각곡선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지만, 부가적으로 큰 자극에 대한 내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형벌론의 원리를 통해, 필자는 기술 발전과 그에 대한 영향을 일상 속에서 꾸준하고 빈번하게 접하는 것이 ‘지신’을 행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필자의 경험과도 큰 연관성이 있다. 필자는 초등학생이던 당시 2015년 휴보가 다르파(DARPA) 재난대응 로봇대회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읽고 처음으로 기술 발전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그때의 필자는 다르파 대회라는 자극 때문에 그 당시 한창 로봇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후에 다른 기술 발전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았고, 이는 빈번하고 작은 자극이 아닌 순간의 큰 자극으로 끝났기 때문에 금세 흥미를 잃게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제4차 산업혁명’을 다시 읽게 되었고, 이는 기술 발전에 대해 지속적인 자극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기술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고, 2015년 이후로 찾아보지 않았던 다보스포럼(Davos Forum)에 대해 다시 알아보는 등의 습관이 생겼다. 이 습관을 통해 필자는 현재까지 기술 발전에 대한 포럼과 연구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필자의 경험에 따라 ‘지신’을 위해서는 베카리아의 형벌론의 원리와 같이 관심 분야와 관련된 기술 발전을 경험할 작은 계기를 만들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에 대한 자극을 찾아보는 것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집필된‘제4차 산업혁명’ 속 클라우스 슈밥은 2016 다보스포럼에서 논의된 산업혁명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클라우스 슈밥은 이미 산업혁명으로 인한 국가 간의 불평등 심화를 예상했다. 2019 다보스포럼에서도 클라우스 슈밥은 여전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국가 간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2023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다보스 포럼을 통해 보는 제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부작용,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은 상술한 트럭의 완전 자율주행화와 같이 기술의 발전에 국한되지 않은, 개인, 기업, 국가 모두의 ‘연결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되, 인류애를 잃지 않고 타인과의 범국가적이고 범계층적인 긴밀한 연결성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